지난 포스팅에서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디지털 시스템(MES, IoT 센서 등)을 도입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화면에 알록달록한 그래프가 뜨고 실시간 수치가 올라오니 이제 다 된 것 같았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현장 반장님들은 여전히 화면 속 데이터보다 본인의 귀와 손끝 감각을 더 신뢰했습니다. "데이터는 그렇게 나와도, 내 느낌엔 지금 설비 소리가 이상해"라며 기계를 세우기 일쑤였죠. 막대한 투자를 해놓고도 과거 방식으로 회귀하려는 관성을 깨는 것, 그것이 디지털 전환 2단계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오늘은 제조부서장으로서 데이터를 현장의 언어로 번역하고, 팀원들에게 '데이터 리터러시(문해력)'를 심어준 과정을 공유합니다.

1. '감(感)'을 무시하지 말고, '데이터'로 증명하게 하라
수십 년 현장 밥을 먹은 베테랑의 직관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입니다. 저는 그들의 '감'을 데이터와 대립시키는 대신, 데이터를 통해 그 감을 증명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반장님, 소리가 이상하다고 느끼신 시점의 진동 센서 데이터를 같이 한번 볼까요? 아, 정말 여기 평소와 다른 파형이 찍혔네요!"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죠. 본인의 직관이 디지털 데이터로 확인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베테랑들은 누구보다 강력한 데이터 신봉자가 됩니다. 그들의 경험칙이 데이터 해석의 가장 훌륭한 가이드북이 되는 순간입니다.
2. 사후 약방문(기술대응)에서 사전 예방(예지 보전)으로
과거의 우리는 설비가 고장 나면 그때야 부랴부랴 달려가서 고치는 사후 기술대응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쌓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스마트 팩토리의 꽃인 '예지 보전(Predictive Maintenance)'입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특정 부품의 온도 상승 패턴과 고장 시점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이 베어링 온도가 50도를 넘어서면 3일 안에 축 정렬 불량이 발생한다"는 패턴을 찾아냈을 때, 현장은 열광했습니다. 기계가 비명을 지르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데이터가 주는 '통제감'을 맛본 조직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3. '왜(Why)'를 보여주는 데이터 시각화
현장 작업자에게 복잡한 통계 수치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데?"에 대한 직관적인 답입니다.
저는 사무실의 분석가들과 협업하여, 현장 모니터에는 아주 단순한 신호등 지표만 표시하게 했습니다. '초록색(정상) - 노란색(주의, 속도 줄일 것) - 빨간색(정지, 즉시 보고)'. 그리고 노란색이 떴을 때 '왜' 그런 신호가 떴는지(예: 3번 압출기 압력 저하)를 한글로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어려운 데이터를 쉽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부서장이 해야 할 기술지원의 핵심입니다.
4. 작은 성공 사례(Small Wins)를 빠르게 만들어라
거창한 AI 분석이나 빅데이터 프로젝트로 시작하면 현장은 금방 지칩니다. 저는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 하나를 데이터로 해결하는 경험을 먼저 선물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시간대에만 발생하는 미세한 불량을 온도/습도 데이터와 매칭해 해결한 사례를 대대적으로 칭찬하고 포상했습니다. "별것 아닌 데이터도 모아놓고 보니 큰 문제를 해결하더라"는 성공 체험이 공유될 때, 조직 전체에 '데이터로 일하는 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5. 결론: 결국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스마트 팩토리의 주어는 '스마트'가 아니라 '팩토리'입니다. 그리고 그 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그것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동료 부서장 여러분, 혹시 공장 한구석에서 비싼 디지털 장비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팀원들과 함께 그 장비 앞에 서서 가장 쉬운 데이터 하나를 같이 읽어보십시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여러분의 공장은 진짜 스마트 팩토리로 가는 첫발을 내딛는 것입니다.